보성기행(寶城記行) 1
ㅡTS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우리 8명의 친족 멤버들은
3대의 차량에 분승하여 한달 전에 미리 예약해 둔,
보성군 회천면 해변에 위치한 '햇살 펜션'을 향해 출발하였다.
어린이날 애들과 함께 공원이나 동물원을 찾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 애들은 다 커서 제 새끼들을 데리고 따로들 놀러가고,
평균 나이 70대 중반의 노인들만 2박3일의 여행을 차라리 홀가분
하게 즐기게 되었다.
여행기간 내내 비 예보가 있었지만 숙박비를 선불한 터라 그냥 강행
하기로 했다.출발할 때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점차 걷히는 듯하여
'이놈의 일기예보는 통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출발하길 잘 했어!'
말 떨어지는 순간 후두둑 소리를 내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차창을
사정없이 때려댄다.
'이런 제길!잘 못 왔나?'
실망도 잠시, 어느새 거짓말처럼 빗줄기가 걷히더니 비구름 마저
흩어지고 저 멀리 산 꼭대기 위에 목책을 둘러친 듯한 키 큰 나무들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펜션 도착까지 대충 5시간 정도 걸렸는데, 1미터 바로 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를 동반한 폭우가 퍼붓다가,구름을 뚫고
햇살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가 ᆢ
옛말에 변덕이 동짓날 팥죽 끓듯하다 라는 표현은 바로 이럴 날씨를
두고 한 말일 터이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보성 특산물인 매실을 먹여 키웠다고
주장(?)하는 돼지 삼겹살과 막걸리로 저녁을 해결하고
바로 해변에 위치한 '햇살펜션'에 짐을 풀었다.
비가 와서 펜션 잔디는
질척질척하고 주변에 상가도 안 보이고 해서 이거 숙소를 잘 못
잡았나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 갔으나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어라,겉보기보다 실속이 있네! 라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인테리어는 아주 고급스럽지는 않았지만 실속은 만점에 가까왔다.
있을 건 거의 다 구비되어 있고, 불필요한 건 없었다라고나 할까!
어려운 문자를 쓰면 피갈회옥
(被褐懷玉/삼베 옷 속에 옥을 품다)이라고 하면 너무 나갔나?
흠,하여튼 사람이건 사물이건 겉보기로 속단은 금물이지.
방마다 앞벽에 걸린 대형 액자도 전국 규모의 사진전에 입상하거나
공공 건물 현관에 오랫동안 전시되어 있던 펜션 사장의
작품 사진이라고 한다
(그림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 간단히 말해서 모든 실내 비품들의
구비와 배치가 영업적이라기 보단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안 꾸미듯
해놓았다고나 할까?
수건도 세면용과 발닦이용이 따로 구별되어 있어 좋았고, 지금은 4성급
호텔에 조차 잘 설치되어 있지 않은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내겐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짐을 대충 풀어놓고 우산을 쓰고 바깥으로 나와 보았다.
어둠이 살짝 깔리는 바닷가에 물안개가 얕게 피어오르고
간혹 흩날리는 비바람에 은빛 날개를 춤추듯 흔들며
그리움처럼 내게로 다가와 작은 포말(泡抹)을 남기고
사라지는 파도를 보았는가?
영겁(永劫)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나는 말을 잃는다
바람 안개 비와 파도ㆍㆍ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생각나는 밤이다.
주인 내외가 직접 수년에 걸쳐 조성하였다고 하는,
약 천 여평 가량쯤 돼보이는 수백여가지의 꽃,각종 분재와
수석,크고 작은 돌과 바위들로 오밀조밀하게 때론 장대하게
만들고 가꾼 정원은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본 것 같다.
게다가 바로 정원 앞 해변의 수천개의 크고 작은 바다
암석(岩石)은 금상첨화이다.
정원이라기 보단 차라리 중세 귀족의 무슨 장원(莊園)
같이 웅장한 느낌이었다.
ㅡ1편 끝
(2편은 내일 강진 가우도
다녀와서 쓸 계획임)
햇살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어머님을 비롯 형제분들의 화기한 가족의 영상보다 아름다울까요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장문의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뭏튼 좋지 않은 기상으로 2박이라 미안한 맘으로 저희 부부는 오셨던분 전부든 한가족이든 대폭할인 서비스로 꼭 모시겠습니다
어머님의 만수무강을 햇살바다와 함께 소망합니다